선교사 소개

캄보디아 윤구행, 김정희 선교사님 - 도움주실분댓글요망

갓러브하우스 2010. 3. 8. 09:53

오랜세월 그리스도를 위해 두 선교사님의 삶을 파이린에 심으신 선교사님이십니다.

2010. 2. 22일 편지입니다.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지강애비



우리를 도와서 파이린을 살립시다.


지난 10년간 이 땅에 사역을 하면서 동역자와 교회가 같이 우리를 도와서 이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사역은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파이린은 공산 크메르군 들이 자기 민족을 공산주의에 방해된다고 300여 만명을 가장 잔인한 고문 살해한 킬링필드의 피의 역사를 일어킨 장본인들... 세계인류가 경악했던 사건을 일으킨 크메르루즈 군대가... 훗날 베트남과 캄보디아 정부연합군에게 밀리고 밀려 최후에 근거지로 삼은 곳. 태국 국경 서쪽 끝에 있는 파이린입니다


지옥문 앞에 있는 파이린은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은 곳 - 이 무서운 땅 - 절망의 땅에 2001년 3월에 어느 교단, 교회, 누구의 보냄도 없이... 당시 파이린의 크메르 지도자가 2000년 1월에 홍콩에서 우리에게 와서 도와 달라는 간청을 주님의 가라 하시는 음성으로 듣고 죽기를 각오하고 저희 부부가 10년 전에 지옥같은 이 땅에 첫발을 내딛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제 나이 58세였고, 그 후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 68세로 모두들 쉬는 나이에도 아직도 주께서 주신 사명 때문에 이 글을 드려야 하는 저를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캄보디아에서의 제 일 기 사역은 파이린에 거점을 두고 다른지역 (바탐봉, 시스폰, 시엔립 등) 지역에 교회 15개, 고아원 하나를 세우는 일을 했고, 이 일은 태국선교사 이규식목사와 같이 선교비를 50대 50으로 부담하여 사역하여 준비한 일들이었습니다. 이 일들을 준비하느라 저는 많은 힘이 들었으나 견디며 일을 마무리 했습니다. 파송받은 교단도 교회도 없이 제 주변의 협력과, 나의 자비량으로 이 일과 피이린까지 같이 할려니 감당하기가 힘들어 협의하여 그 쪽은 이규식목사에게 다 맡기고 저는 파이린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파이린 선교사역

파이린 선교 사역도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발전하여 파이린 시내의 파이린 교회를 비롯하여 주변에 교회를 세우고 점점 남북으로 뻗어 태국 국경 크메르군과 가족들이 대다수인 지역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 어느 덧 20개 교회와 학교 1개를 완성하고 3개의 학교를 건축중입니다

 

이 일을 하기까지는 저를 아는 분들과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와 이루어 지게 되었고, 자녀들과 가족들도 큰힘을 보태었습니다. 선교센타도 2008년까지는 파이린의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인 황미에 있다가 부도가 나서 갈 곳이 없어 얻은 것이 파이린 시장님의 공관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글학교를 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를 많이 세우다 보니 지도자가 너무 부족하고, 각 교회서도 요청이 있어 지도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우리 센타에서 집중 지도자 훈련... (성경, 교회사, 목회학 교리 찬양, 율동 등을 가르쳤고 현지인 목회자 소티어씨와 싸분운도 매일 각각 한 시간씩 신구약 총론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배우는 학생들은 파이린, 바땀봉, 시스폰, 캄퐁츠낭, 라앰, 프놈쁘록, 삼섭, 까빈 여러 지역에서 온 19명 입니다. 그 동안 일을 하며 이 지역에 오래 살다 보니 선교사역이 더 넓게 급진적으로 확산되어가고 있고, 더욱 감사한 것은 파이린의 최고 지도자 한 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최근에 제가 현지의 여러분들에게서 듣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분이 저도 모르게 저를 많이 돕고 보호해 준 여러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말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프놈펜 행정부에서도 파이린의 저의 선교사역이 너무 크게 확산됨을 알고 불교나라인 우리나라에 너무 많은 교회를 세우므로 제재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몇 년전에 행정부 고위층과 친분이 있는 분이 듣고는 나를 당분간 파이린을 떠나 피신을 하라고 권한 일이 있었으나 마음 쓰지않고 묵묵히 사역을 했는데... 지금 알고보니 이분이 프놈펜 종교국으로 파이린 종교국 관리에게 전화하고 만나서 나를 적극 옹호해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놈펜이나 파이린에 지도자들에게 말하기를 이 분은 파이린을 위해 10년을 이곳에 살면서 고생하며 우리를 도와 주는 분이니 이 분은 손 대지말라고 부탁을 하더라고 종교국 관리가 최근에 저를 만나 알려 주었습니다. 그 후에 그 분을 만나 인사를 드렸드니 친히 곳곳에 전화를 하고 가서 만나기도 하여 나를 도운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이분을 자주 만나지도 않았고 지난 십여년 동안 네 번 정도 만난 기억이 전부인데 그 분이 주님을 믿으면서 나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고 우리 주님의 오묘한 섭리에 너무나 감격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이 땅 선교를 위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밀히 미리 돕고 보호해 주심을 후에야 알고는 새삼 놀랐습니다

 

이 땅에 이렇게 활짝 열린 선교의 기회를 통하여 최대한 복음의 거점을 마련하느라 미력한 힘이나마 노력했고 주께서 함께해 주셨기에 오늘이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에게 조금씩 절박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을 고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파송한 교단, 교회 없이 이일을 하다보니 선교 자금이 항상 안정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마른 하늘을 보며 단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모험을 하면서 오늘에 이 큰 사역이 되어졌습니다 . 그러나 저 혼자힘으로는 감당치 못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곳에 와보고는 이 일을 혼자 했습니까? 한 교단이 밀어도 못 할 일이라고 하면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이 일은 유지할려니 - 솔직한 고백입니다 - 재정적으로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당건축을 한국 교회나 개인이 하셔도 부담해 주시는 비용은 70%정도 됩니다. 나머지 30%~40%는 언제나 제가 담당해야 했고, 어떤 교회는 50%~60%까지 제가 부담하며 일을 했습니다. 또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보내고 교회 운영을 해야하는 데 운영비를 계속 지원하는 일은 2~3곳 뿐이고 나머지 16~17 교회는 제가 비용을 내어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또 센타에서 신학생 교육도 16~20여명의 젊은이들이 특별 훈련을 받으며 새벽 4시 30분에서 저녁 10시까지 집중훈련을 합니다. 이 사역의 경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쌀만 해도 1주일에 50Kg 한 포가 필요합니다. 부식비, 숯 등이)... 한글 학교 운영, 선교 센타 운영 등등...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힘들게 유지해 왔으나 일이 점점 더 커지다보니 이제 저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포기 하기도 어렵습니다. 파이린에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여러 동역자와 한국 교회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파송교단 교회도 없이 오늘에 이르다 보니 말라가는 논 바닥을 바라 보는 농부심정으로 주님의 도움의 손길을 구했습니다. 또 저 혼자 이곳의 교통, 통신 모든 것이 극도로 어려운 곳에 살다보니 그동안 자주 소식도 못드렸고, 자주 나가 뵙지도 못하다보니 어떤분들은 1~2년 돕다가 대개 지원을 중단되곤 합니다. 교단이나 한교회에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지원도 없다보니 너무나 막막합니다. 그동안 저의 자비로 또 자식들, 아는 몇몇분들의 지원으로 오늘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다른 대책이 강구되어야만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이 선교지에서 충심에 호소하는 호소를 주님의 부탁으로 들어주시고 이제 이 선교. 이 파이린 공산 크메르를 변화시키는 이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간곡한 부탁을 주님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기도해주십시오..

  1. 선교가 영적 전쟁이 보급품이 없어 중단 되지 않도록 선교에 동역자들을 붙여주시도록.... 선교사의 건강, 안전을 위해...
  2. 한 교회씩 입양하여 도와 주십시오
    • 한 교회 입양하여 지도자 생활비, 교회운영비, 한글학교, 영어학교선생 생활비 포함하여 한 교회에150$가 필요합니다. 매월 150$ 지원으로 학교에 60~70명의 영혼을 살리고 나아가 수백명의 영혼을 살리게 되는 교회가 됩니다
  3. 우리 선교 센타에 공부하는 15~19명의 신학생을 입양하여 목회자로 교육받고 일하가까지 지원해 주세요 신학생 한사람 입양 양육비는 한달에 50$.. 두사람이면 100$이 필요합니다.
  4. 이곳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저와 아내를 좀 도와 주십시오. 아직은 이 곳에 저희들이 필요합니다
    •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 관계, 고위층과의 형제같은 관계, 이 지역 문화, 지리풍토를 저들이 이땅에 일하는 데는 필요합니다. 우리의 선교 사역비를 도와 주세요. 아내도 이 곳 십년 사역으로 이제 다리 무릎이 다 닳아서 연골 이식 수술로 불가능하여 다른 수술을 하고 5개월째 휠체어를 타고 일합니다. 치료도 못받고 이 곳에 있으나 많이 좋아져 이제 몇 발자국을 걸어봅니다.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제게는 중고 고물차가 하나 있습니다. 기름도 넣고 차도 고쳐야 하고 우리 활동비도 필요합니다. 이 일은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같이 도와서 우리 부부가 일하도록 후원해 주십시오. 이 편지를 선교사로 나온지 10년만에, 어려운 편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고 있습니다. 나의 생활비를 도와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이제 정리하고 더 큰사역으로 펼치기 위해서 이 중대한 고비에서 동역자가 되어주셔서 참으로 가치 있는 투자를 해서 영원히 영광스런 기업을 준비하시기를 감히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아래 구좌로 송금해 주세요

 

 우체국    613448-02-013732...윤구행

 농  협     899-02-143703.....김정희 ...후원계좌입니다

 

저는 집사람 무릎 치료차 4월 초에 집사람과 같이 한국에 나가려고 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숨은 예수님 제자로 나를 말없이 비밀리에 돕던 과거 크메르의 지도자 부부가 비자가 나오면 함께 한국에 갈 예정입니다 (현재 파이린에 최고지도자)... 이 분은 다리가 하나 없어 부부가 같이 가야할 사정으로 두 분을 모시고 한국에 가서 한국의 우리 동역자와 교회를 방문코저 합니다. 이 분이 작년 8월에 오신 온천교회 안용운 목사님과 장로님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예수 믿소" 하면서 자신이 읽던 성경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분을 저가 한국에 초청을 했습니다. 본인은 극구 사양을 했으나 저가 많이 권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분들의 한국 왕복과 채류 경비도 성도님들과 교회들이 조금씩 부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동역자 여러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악랄했던 공산주의자들의 거점도시 파이린을 이제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주님의 명하심을 따라 평화의 도시로 만드십시다

 

감사합니다. 파이린을 살리려 호소하는 윤구행, 김정희 선교사가 드립니다